서울 고척스카이돔이 오롯이 한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2025년 9월 6일, KBS 광복 80주년 대기획 '이 순간을 영원히–조용필'은 약 1만8000명을 초대한 전석 무료 공연으로 열렸고, 150분 동안 28곡을 쏟아낸 무대는 '가왕'의 현재형을 증명했다. 뜨거운 함성, 숨 고를 틈 없이 이어진 세트리스트, 위대한탄생의 단단한 사운드가 돔 천장을 흔들었다.
이번 공연은 1997년 '빅쇼' 이후 28년 만에 KBS가 선보인 초대형 단독 기획이자, 고척돔 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스테이지 연출로 회자됐다. 현장 녹화는 추석 연휴에 방송 편성되어 더 많은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었고, 리허설부터 본 녹화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흐름 속에서 조용필은 '지금'의 목소리로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압축해 보여줬다.
조용필 콘서트 핵심 포인트
러닝타임 약 150분, 총 28곡 구성. 데뷔 초 히트곡부터 20집 수록곡까지 시대별 히스토리를 관통했다. 간결한 멘트와 곧장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템포가 ‘끊김 없는 서사’를 만들었고, 대형 스크린과 입체 조명이 곡의 결을 바꾸며 돔 특유의 잔향을 밴드의 타이트한 톤으로 상쇄했다. 중후반으로 갈수록 정렬되는 조명 설계와 카메라 워크가 라이브의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세트리스트와 보컬·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부드럽게 문을 열자 관객석 합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친구여'와 '바람의 노래'는 중·장년층의 기억을 현재 시점으로 소환했으며, 후반부 'Bounce'는 돔을 축제장으로 바꾸었다. '태양의 눈'은 하드록에 가까운 질감으로 편곡돼 강렬한 리프와 드럼이 무대를 밀어붙였다.
조용필 특유의 호흡 조절과 진·가성을 넘나드는 창법 위에 위대한탄생의 정확한 리듬 섹션이 얹히며, 세대 간 간극을 메운 건 결국 ‘노래의 설득력’이었다.
편곡은 원곡의 감성을 지키되 현재적인 사운드로 질감을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이었다. 리듬을 한 박 반 빠르게 밀어 붙이거나 브리지에 브라스 섹션을 더해 곡의 입체감을 키웠고, 파워 발라드 구간에서는 현악과 신스의 층을 촘촘히 쌓아 돔 공간을 촉촉하게 적셨다. 빌드업–드롭 구조를 활용한 조명과 영상의 싱크도 뛰어났다.
무대·연출·현장 에너지
돔 전체를 감싸는 스테이지 스케일과 특수효과, 막힘없는 카메라 동선이 대기획의 '물량'을 체감케 했다. 중앙 메인 스테이지와 양측 확장 동선이 관객을 끌어안았고, 응원봉 물결은 1만8000명이 하나의 후렴을 만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음향은 저역의 번짐을 억제하고 보컬 중심으로 미드·하이를 정교하게 세팅해 가사 전달력을 극대화했다.
연출의 핵심은 곡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데 있었다. 흑백 그레인의 다큐 톤이 회고적 무드를 만들면, 다음 곡에서 곧장 네온 팔레트로 전환해 ‘현재형의 조용필’을 강조했다. 엔딩 섹션의 페이퍼샤워와 스파클은 과도함 대신 여운을 택했고, 관객석 파노라마 숏은 돔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한 곡의 맥박’으로 묶었다.
의미와 확장성
KBS와 서울시가 함께 만든 무료 초대형 공연은 ‘공공성’과 ‘대중성’의 접점을 실험한 자리였다. 아이돌 그룹도 장악하기 어려운 돔에서 솔로 보컬의 존재감으로 무대를 완성했다는 사실은, 조용필이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기준점임을 확인시킨다.
현장 녹화의 방송 편성은 열기를 안방으로 확장하며 세대 간 공감대를 넓혔다. 공연 산업 관점에서 보면, 브랜드 협업·도시 축제화·방송 유통을 연결한 모델로도 의미가 크다.
특히 이번 기획은 아카이브의 가치도 높였다. 음향·영상·연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이후 돔 공연의 제작 레퍼런스로 쓰일 수 있고, ‘가왕’ 서사의 현재형 챕터로 기록된다. 히트곡을 박물관 유물처럼 보관하는 대신, 지금의 기술과 감각으로 재생산해 세대 간 교차점을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마무리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타이틀은 과장이 아니었다. 세대의 추억을 현재의 사운드로 호출하고, 노래의 본질로 돔을 설득한 밤. 오랜 시간 쌓인 내공은 기술과 물량을 넘어 한 곡 한 곡에 ‘살아 있는 호흡’을 불어넣었다. 28곡을 관통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가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음 무대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의 현재형이다.